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문단 편집) === 왕대비 === 차남 [[조지 5세]]가 즉위한 후 왕대비가 되었다. 선왕과 왕대비가 대관식에 참석하면 안 된다는 관례에 따라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거처도 [[버킹엄 궁전]]에서 말보로 하우스로 옮겼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조카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전원 총살 당하였다. 1919년 여동생 [[덴마크의 다우마|다우마]]는 언니의 설득으로 딸들과 함께 영국에 망명하여 알렉산드라와 같이 지냈지만 곧 덴마크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냈다.[* [[영국]]에서는 알렉산드라가 왕비이다 보니 자신이 등한시되는 기분이 들어 덴마크로 갔다고 한다.][* 이 때 마리아는 조카인 조지 5세를 보고서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고 착각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두 사람이 워낙에 쌍둥이처럼 닮았다 보니 벌어진 웃지 못할 일화.] [[파일:1280px-Alexandra_of_Denmark.jpg|width=500]] 말년의 알렉산드라 남편과 사이가 나빴던 알렉산드라였지만 세 아들 중 유일하게 요절하지 않고 왕위에 오른 아들 조지 5세와의 관계는 각별했기에 알렉산드라의 말년은 대체로 평안하였다. 그러나 1920년부터는 건강이 악화되어 각종 질병에 시달렸는데 귀가 들리지 않아 의사 소통이 불가능해졌고 눈의 혈관이 터져 시력을 점점 잃어갔으며 치매까지 와서 기억마저 점점 흐릿해졌다. 그렇지만 1923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손자인 [[조지 6세|요크 공작 앨버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결혼식에 참석했으며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1925년 11월 20일, 80세의 나이에 요양을 하던 노퍽의 생드링엄 하우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사후 장례식이 치루어졌고 유해는 성 조지 성당의 남편 옆에 안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